▶작가. 류시화 엮음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성자가 된 청소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나와 함께 시집을 엮기로 약속하고서
멀리 여행을 떠난 정채봉 선생께 이 시집을 바친다.
누구보다도 삶과 시를 사랑했던 그에게.
우리는 입속의 혀처럼 삶에 묶여 있으나
그는 시간의 틈새로 빠져나갔다'
#여인숙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탕 내가 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잘랄루딘 루미.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슬픔의 돌
슬픔은 주머니 속 깊이 넣어 둔 뾰쪽한 돌멩이와 같다.
날카로운 모서리 때문에
당신은 이따금 그것을 꺼내 보게 될 것이다.
비록 자신이 원치 않을 때라도.
때로 그것이 너무 무거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힘들 때는
가까운 친구에게 잠시 맡기기도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머니에서
그 돌멩이를 꺼내는 것이 더 쉬워지리라.
전처럼 무겁지도 않으리라.
이제 당신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때로는 낯선 사람에게까지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은 돌멩이를 꺼내 보고 놀라게 되리라.
그것이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의 손길과 눈물로
그 모서리가 둥글어졌을 테니까.
-작가 미상.
#눈물
만일 내가 무엇인가로 돌아온다면
눈물로 돌아오리라.
너의 가슴에 잉태되고
너의 눈에서 태어나
너의 뺨에서 살고
너의 입술에서 죽고 싶다.
눈물처럼
-작가 미상.
#생이 끝났을 때
죽음이 찾아올 때
가을이 배고픈 곰처럼
죽음이 찾아와 지갑에서 반짝이는 동전들을 꺼내
나를 사고, 그 지갑을 닫을 때
나는 호기심과 경이로움에 차서
그 문으로 들어가리라.
그곳은 어떤 곳일까, 그 어둠의 오두막은.
그리고 주위 모든 것을 형제자매처럼 바라보리라.
각각의 생명을 하나의 꽃처럼
들에 핀 야생화처럼 모두 같으면서 서로 다른.
생이 끝났을 때 나는 말하고 싶다.
내 생애 동안 나는 경이로움과 결혼한 신부였다고.
세상을 두 팔에 안은 신랑이었다고.
단지 이 세상을 방문한 것으로
생을 마치지는 않으리라.
-메리 올리버.
#늙은 철학자의 마지막 말
나는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다.
싸울 만한 가지가 있는 상대가 없었기에.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 다음으로는 예술을 사랑했다.
나는 삶의 불 앞에서 두 손을 쬐었다.
이제 그 불길 가라앉으니 나 떠날 준비가 되었다.
-월터 새비지 랜더. 일흔다섯 번째 생일에 썼음.
#사막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르텅스 블루.
(파리 지하철 공사에서 공모한 시 콩쿠르에서
8천 편의 응모작 중 1등 당선된 시)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는가.
내가 나를 소유하는 순간은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인가,
아니면 내쉬는 동안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음에 무엇을 쓸지
연필이 알고 있는 정도,
또는 다음에 어디로 갈지
그 연필심이 짐작하는 정도.
-잘랄루딘 루미.
#신을 믿는 것
아무런 열정도
마음의 갈등도
불확실한 것도, 의심도
심지어는 좌절도 없이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신에 관한 생각을 믿고 있을 뿐이다.
-미구엘 드 우나무노
#나이
누군가 나에게 나이를 물었지.
세월 속에 희끗희끗 해진 머리를 보고 난 뒤
내 이마의 주름살들을 보고 난 뒤.
난 그에게 대답했지.
내 나이는 한 시간이라고.
사실 난 아무것도 세지 않으니까.
게다가 내가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는.
그가 나에게 말했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설명해 주세요.
그래서 난 말했지.
어느 날 불시에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에게
입을 맞추었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입맞춤을.
나의 날들이 너무도 많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만을 세지.
왜냐하면 그 순간이 정말로
나의 모든 삶이었으니까.
-이븐 하짐
#여섯 가지 참회
내가 생각해야만 하는데도 생각하지 않은 것과
말해야만 하는데도 말하지 않은 것
행해야만 하는데도 행하지 않은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생각한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말한 것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행한 것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소서.
-젠드 아베스타(기원전 6세기 경)
페르시아 조로아스터 경전의 기도문
#일일초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도 또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 주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호시노 도미 히로.
(교사 시절 기계 체조를 가르치다가
철봉에서 떨어져 전신마비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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