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시인14 김재진 '하모니카를 잃어버렸네' 돌이켜보면 모두 사라져 버렸네.밤새워 이야기하던 친구도영화 속의 주인공을 찾아 헤매던 발길도 지워져버렸네.십 년 만에 만난 사람 앞에서도 무덤덤한,잠깐 반가움이 지나고 나면 시들해지는,망각만이 유일한 나저기 건물의 유리에 비친 나 또한 내가 아니네.퀭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낯선 저 사내는 도대체 나일 수 없네.황망히 바퀴 굴려알 수 없는 복잡함 속으로 떠나는 저 자동차들만이내가 있는 곳을 안다고 하네.읽었던 한 권의 책머리를 들끓게 하던 한때의 이념열렬했던 사랑마저 내가 아니네.하숙집 벽 위에 붙여놓았던 몇 줄의 잠언 속에도 나는 없네.정말 하모니카를 잃어버렸네. 2024. 9. 19. <소나무 연가> 시인 이해인 수녀님 늘 당신께 기대고 싶었지만 기댈 틈을 좀 체 주지 않으셨지요 험한 세상 잘 걸어가라 홀로서기 일찍 시킨 당신의 뜻이 고마우면서도 가끔은 서러워 울었습니다 한결같음이 지루하다고 말하는 건 얼마나 주제넘은 허영이고 이기적인 사치인가요 솔잎 사이로 익어가는 시간들 속에 이제 나도 조금은 당신을 닮았습니다 나의 첫사랑으로 새롭게 당신을 선택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의무가 아니라 흘러넘치는 기쁨으로 당신을 선택하며 온몸과 마음이 송진 향내로 가득한 행복이여 2024. 9. 13. 김재진 시인 <너를 만나고 싶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습관이나 잦은 실수, 쉬 다치기 쉬운 내 자존심을 용납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직설적으로 내뱉고선 이내 후회하는 내 급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스스로 그어둔 금 속에 고정된 채 시멘트처럼 굳었거나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헤치고 너를 만나고 싶다. 입꼬리 말려 올라가는 미소 하나로 모든 걸 녹여버리는 그런 사람. 가뭇한 기억 더듬어 너를 찾는다. 스치던 손가락의 감촉은 어디 갔나. 다친 시간을 어루만지는 밝고 따사롭던 그 햇살. 이제 너를 만나고 싶다. 막무가내의 고집과 시퍼런 질투. 때로 타오르는 증오에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내 못된 인간을 용납하는 사람. 덫에 치여 비틀거리거나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 2024. 9. 4. 이해인 수녀님 <작은 노래> 어느 날 비로소 큰 숲을 이루게 될 묘목들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갓 태어난 어린 새들 어른이 되기엔 아직도 먼 눈이 맑은 어린이 한 편의 시가 되기 위해 내 안에 민들레처럼 날아다니는 조그만 이야기들 더 높은 사랑에 이르기 위해선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조그만 슬픔과 괴로움 목표에 도달하기 전 완성되기 이전의 작은 것들은 늘 순수하고 겸허해서 마음이 끌리는 걸까 크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것들의 숨은 힘을 사랑하며 날마다 새롭게 착해지고 싶다 풀잎처럼 내 안에 흔들리는 조그만 생각들을 쓰다듬으며 욕심과 미움을 모르는 작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행복한 나라를 꿈꾸어본다 작은 것을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보이지 않게 심어주신 나의 하느님을 생각한다 내게 .. 2024. 8. 30. 이전 1 2 3 4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