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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14

김재진 '하모니카를 잃어버렸네' 돌이켜보면 모두 사라져 버렸네.​밤새워 이야기하던 친구도영화 속의 주인공을 찾아 헤매던 발길도 지워져버렸네.​십 년 만에 만난 사람 앞에서도 무덤덤한,잠깐 반가움이 지나고 나면 시들해지는,망각만이 유일한 나​저기 건물의 유리에 비친 나 또한 내가 아니네.​퀭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낯선 저 사내는 도대체 나일 수 없네.​황망히 바퀴 굴려알 수 없는 복잡함 속으로 떠나는 저 자동차들만이내가 있는 곳을 안다고 하네.​읽었던 한 권의 책머리를 들끓게 하던 한때의 이념열렬했던 사랑마저 내가 아니네.​하숙집 벽 위에 붙여놓았던 몇 줄의 잠언 속에도 나는 없네.​정말 하모니카를 잃어버렸네. 2024. 9. 19.
<소나무 연가> 시인 이해인 수녀님 늘 당신께 기대고 싶었지만 기댈 틈을 좀 체 주지 않으셨지요 ​ 험한 세상 잘 걸어가라 홀로서기 일찍 시킨 당신의 뜻이 고마우면서도 가끔은 서러워 울었습니다 ​ 한결같음이 지루하다고 말하는 건 얼마나 주제넘은 허영이고 이기적인 사치인가요 ​ 솔잎 사이로 익어가는 시간들 속에 이제 나도 조금은 당신을 닮았습니다 ​ 나의 첫사랑으로 새롭게 당신을 선택합니다 ​ 어쩔 수 없는 의무가 아니라 흘러넘치는 기쁨으로 당신을 선택하며 온몸과 마음이 송진 향내로 가득한 행복이여 2024. 9. 13.
김재진 시인 <너를 만나고 싶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습관이나 잦은 실수, 쉬 다치기 쉬운 내 자존심을 용납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직설적으로 내뱉고선 이내 후회하는 내 급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스스로 그어둔 금 속에 고정된 채 시멘트처럼 굳었거나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헤치고 너를 만나고 싶다. 입꼬리 말려 올라가는 미소 하나로 모든 걸 녹여버리는 그런 사람. 가뭇한 기억 더듬어 너를 찾는다. 스치던 손가락의 감촉은 어디 갔나. 다친 시간을 어루만지는 밝고 따사롭던 그 햇살. 이제 너를 만나고 싶다. 막무가내의 고집과 시퍼런 질투. 때로 타오르는 증오에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내 못된 인간을 용납하는 사람. 덫에 치여 비틀거리거나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 2024. 9. 4.
이해인 수녀님 <작은 노래> 어느 날 비로소 큰 숲을 이루게 될 묘목들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갓 태어난 어린 새들 ​ 어른이 되기엔 아직도 먼 눈이 맑은 어린이 한 편의 시가 되기 위해 내 안에 민들레처럼 날아다니는 조그만 이야기들 ​ 더 높은 사랑에 이르기 위해선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조그만 슬픔과 괴로움 ​ 목표에 도달하기 전 완성되기 이전의 작은 것들은 늘 순수하고 겸허해서 마음이 끌리는 걸까 ​ 크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것들의 숨은 힘을 사랑하며 날마다 새롭게 착해지고 싶다 ​ 풀잎처럼 내 안에 흔들리는 조그만 생각들을 쓰다듬으며 욕심과 미움을 모르는 작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행복한 나라를 꿈꾸어본다 ​ 작은 것을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보이지 않게 심어주신 나의 하느님을 생각한다 ​ 내게 ..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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