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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석원
1971년생.
나이 탐험가.
모든 것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별한 그 남자의 일기장...
세상에서 가장 찬란했던 감정의 입자들
숨이 멎는 듯한 내밀한 이야기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이석원은 왜 내 삶은 고요하지 않은가,라고
탄식하듯이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읽다가 거의 멈추어 섰다.
종종 이런 글쓰기를 나는 유서에서나 만났다.
거의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이석원은 글을 써 내려가면서 자기를 자포자기한다.
거기에는 일말의 응석도 없고
그렇다고 그 무언가를 호소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대한 기대는 거의 희미해서 점점 지워져가고 있으며,
어느덧 희망은 자취를 감추었다.
끊임없는 절망과 슬픔의 변주.
그 사이에 끼어드는 사람들과의 인연이라는 참혹한 매개변수.
그의 글은 너무 아름답고 종종 많이 아프다.
때로는 음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희미하게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다.
이석원은 그런 말을 원치 않겠지만
이 책은 세상이라는 낭만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영화감독>
지구라는 별에 잠시 들른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오래 머물 줄이야.
처음에는 복이 참 많아서
이렇게 멋진 별에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빛이 그늘을 만들 듯,
기쁨이 슬픔을 낳고 행복이 고통을 불러오리라는 건
전혀 모르던 시절의 일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석원 씨의 말처럼
보통의 존재가 되어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점점 줄어든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단 하나만을 원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을만한 사람으로 사랑받는 일.
석원 씨의 글을 읽으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그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겠다.
덕분에 우리는 나날이 외로워진다.
우린 참 비뚤어지기 쉽게 태어났다.
그래도 지구라서 다행이다.
화성도, 금성도 아니고, 지구라는 별에서 외로울 수 있어서.
어쨌든 여기엔 노래도 있고,
글도 있으니까.
당신이 노래 부를 때는 그 노래를 듣고,
글을 썼을 때는 그 글을 읽을 수 있으니까.
◆김연수 <소설가>
|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으면서 |
내가 정말로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어느 날 정열이 사라져 버린 상태를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랑을
긴 호흡으로 이어갈 수 있다면 ···
어쩌면 나는 제대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으면서
너무 빨리 사랑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 94년 9월 |
사랑이 무엇인지,
마음은 왜 변하는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그렇지만 그때 그 오징어잡이배들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도 아쉬운 것을 보면,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쉽사리 소멸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사생활 |
공개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 나의 공간과 머릿속 생각,
물건들의 안전은 소중하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혼자 있는 집에서조차
혹 어떤 존재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한 번쯤 가져본 사람이라면 완벽한 비공개의 자유란
얼마나 갖기 어렵고 소중한지 공감할 것이다.
일탈이란, 아무도 모르는 머나먼 타지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나의 집,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곳에서 언제든 가능한 것이다.
| 친구 |
잘 생각해 보세요.
내가 듣기 좋은 말만 하거나
당신에 대해 어떤 반대도 하지 않았다면
난 당신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에요.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솔직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난 나에 대해서만 솔직해요.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싸운 적이 있거나
내가 한 말 때문에 당신이 열받은 적이 있었는지.
그런 적이 있다면 우리 친구예요.
좋아해서 그런 겁니다.
| 이별 뒤의 사랑 |
많은 연인들이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연애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씁쓸하지만 헤어짐이 쉬워진 대신
이제는 헤어짐조차 영원하지 않게 된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요?
오늘날 이별 뒤의 사랑은
이렇게 다시 볼 수 없는 그리움이 아닌
담담함으로 곁에 남게 되었습니다.
|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
돌이켜보면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사람은 아홉 살이 될 때마다
이제 바뀔 나이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지.
나도 이젠 어른인 것인가, 정말 이젠 늙는 건가 ···
물론 나이라는 것이 오로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
나 또한 요즘 서른아홉의 홍역을 앓고 있는 중이니까.
돌이켜보면 열아홉이나 스물아홉에 느꼈던
걱정과 불안들은 지나고 나서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지레 겁을 먹은 것 같다고 느꼈었는데
또다시 서른아홉이 되니 이번에야 말고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기분이 들어.
조금 더 현실적인 느낌이랄까.
| 말과 선언 |
'보고 싶어', '좋아해', '사랑해'
아무런 의심이나 회의 없이, 정말로 순수하고 영원하게
느껴지는 그 말들을 듣고 믿어 의심치 않던 순간들이 그립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듣는 사랑 해,라는 말은
여전히 애틋하지만, 어쩐지 지금의 그 말속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
참 희한한 일 아니냐.
사랑한다는데,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다는데,
이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말을
내가 그토록 귀히 여기는 사람에게서 듣고 있는데도
어째서 기뻐 웃지 못하고
슬픔으로 아득한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 죽음에 관한 상상|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마주하는 횟수는 빈번해지고
그만큼 익숙해진다.
영원히 사실 것만 같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시고
친구들 부모님들의 부음도 하나둘 들려오기 시작하니
이젠 언젠가는 내 부모의 차례도 올 것이다.
또한 나나 내 친구들의 순서가
우리 부모님들보다 꼭이 나중이라는 보장도 없다.
어쨌든 죽음은 누구에게나 한 번씩 오는 거니까.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해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 결혼 |
명심하라.
결혼이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가 아니다.
오히려 결혼은 당신에게 수많은 새로운 문제를 던져준다.
당신이 당신의 동반자와 기꺼이 그 문제를 풀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때 감행하라. 그 무섭다는 결혼을.
| 행복 |
나로선 이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 하나로 다툼과 지긋지긋한 갈등을 미화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정말로 설명이 안 된다.
행복 중의 으뜸이 바로 평범한 행복이다.
왜냐하면 삶이, 세상이 우리를 가만 봐두질 않는다.
일상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만 한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
당신의 인생은 안타깝다.
| 인생에 결론이 없는 사람 |
늘 갈팡질팡하기에 인생의 결론 같은 것은 잘 내리지 못한다.
내게 꿈은 있어야 되는 것이기도 하고
어느 날엔 부질없는 것이기도 해서
여전히 종잡을 수 없고 사랑도 돈도 일도 그러하다.
아침엔 정열을 불태우나 잠들기 전엔 공허감에 몸을 떨고
새해벽두엔 뭔가 열심히 계획을 세우다
이내 그해 그 시간 속에 빨려 들어가
원래대로의 생활에 익숙해져 버리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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