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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_산문집

'보통의 존재' #이석원 #산문집 _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by 메멘토모리:)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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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저자. 이석원

 

1971년생.

나이 탐험가.

 

 


 

 

모든 것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별한 그 남자의 일기장...

세상에서 가장 찬란했던 감정의 입자들

숨이 멎는 듯한 내밀한 이야기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이석원은 왜 내 삶은 고요하지 않은가,라고

탄식하듯이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읽다가 거의 멈추어 섰다.

종종 이런 글쓰기를 나는 유서에서나 만났다.

 

거의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이석원은 글을 써 내려가면서 자기를 자포자기한다.

 

거기에는 일말의 응석도 없고

그렇다고 그 무언가를 호소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대한 기대는 거의 희미해서 점점 지워져가고 있으며,

어느덧 희망은 자취를 감추었다.

 

끊임없는 절망과 슬픔의 변주.

 

그 사이에 끼어드는 사람들과의 인연이라는 참혹한 매개변수.

그의 글은 너무 아름답고 종종 많이 아프다.

 

때로는 음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희미하게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다.

 

이석원은 그런 말을 원치 않겠지만

 

이 책은 세상이라는 낭만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영화감독>

 


 

지구라는 별에 잠시 들른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오래 머물 줄이야.

 

처음에는 복이 참 많아서

이렇게 멋진 별에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빛이 그늘을 만들 듯,

기쁨이 슬픔을 낳고 행복이 고통을 불러오리라는 건

전혀 모르던 시절의 일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석원 씨의 말처럼

보통의 존재가 되어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점점 줄어든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단 하나만을 원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을만한 사람으로 사랑받는 일.

 

석원 씨의 글을 읽으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그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겠다.

 

덕분에 우리는 나날이 외로워진다.

우린 참 비뚤어지기 쉽게 태어났다.

 

그래도 지구라서 다행이다.

화성도, 금성도 아니고, 지구라는 별에서 외로울 수 있어서.

 

어쨌든 여기엔 노래도 있고,

글도 있으니까.

 

당신이 노래 부를 때는 그 노래를 듣고,

글을 썼을 때는 그 글을 읽을 수 있으니까.

 

 

◆김연수 <소설가>

 

 

 

 

 

 

 

 

|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으면서 |

 

내가 정말로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어느 날 정열이 사라져 버린 상태를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랑을

긴 호흡으로 이어갈 수 있다면 ···

 

어쩌면 나는 제대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으면서

너무 빨리 사랑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 94년 9월 |

 

사랑이 무엇인지,

마음은 왜 변하는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그렇지만 그때 그 오징어잡이배들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도 아쉬운 것을 보면,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쉽사리 소멸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사생활 |

 

공개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 나의 공간과 머릿속 생각,

물건들의 안전은 소중하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혼자 있는 집에서조차

혹 어떤 존재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한 번쯤 가져본 사람이라면 완벽한 비공개의 자유란

얼마나 갖기 어렵고 소중한지 공감할 것이다.

 

 

일탈이란, 아무도 모르는 머나먼 타지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나의 집,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곳에서 언제든 가능한 것이다.

 

 


 

| 친구 |

 

잘 생각해 보세요.

 

내가 듣기 좋은 말만 하거나

당신에 대해 어떤 반대도 하지 않았다면

난 당신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에요.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솔직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난 나에 대해서만 솔직해요.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싸운 적이 있거나

내가 한 말 때문에 당신이 열받은 적이 있었는지.

 

그런 적이 있다면 우리 친구예요.

 

좋아해서 그런 겁니다.

 

 


| 이별 뒤의 사랑 |

 

많은 연인들이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연애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씁쓸하지만 헤어짐이 쉬워진 대신

이제는 헤어짐조차 영원하지 않게 된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요?

 

오늘날 이별 뒤의 사랑은

이렇게 다시 볼 수 없는 그리움이 아닌

담담함으로 곁에 남게 되었습니다.

 

 


|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

 

돌이켜보면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사람은 아홉 살이 될 때마다

이제 바뀔 나이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지.

 

나도 이젠 어른인 것인가, 정말 이젠 늙는 건가 ···

물론 나이라는 것이 오로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

 

나 또한 요즘 서른아홉의 홍역을 앓고 있는 중이니까.

 

돌이켜보면 열아홉이나 스물아홉에 느꼈던

걱정과 불안들은 지나고 나서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지레 겁을 먹은 것 같다고 느꼈었는데

 

또다시 서른아홉이 되니 이번에야 말고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기분이 들어.

 

조금 더 현실적인 느낌이랄까.

 

 


 

| 말과 선언 |

 

'보고 싶어', '좋아해', '사랑해'

 

아무런 의심이나 회의 없이, 정말로 순수하고 영원하게

느껴지는 그 말들을 듣고 믿어 의심치 않던 순간들이 그립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듣는 사랑 해,라는 말은

여전히 애틋하지만, 어쩐지 지금의 그 말속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

 

참 희한한 일 아니냐.

 

사랑한다는데,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다는데,

이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말을

내가 그토록 귀히 여기는 사람에게서 듣고 있는데도

 

어째서 기뻐 웃지 못하고

슬픔으로 아득한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 죽음에 관한 상상|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마주하는 횟수는 빈번해지고

그만큼 익숙해진다.

 

영원히 사실 것만 같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시고

친구들 부모님들의 부음도 하나둘 들려오기 시작하니

이젠 언젠가는 내 부모의 차례도 올 것이다.

 

또한 나나 내 친구들의 순서가

우리 부모님들보다 꼭이 나중이라는 보장도 없다.

어쨌든 죽음은 누구에게나 한 번씩 오는 거니까.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해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 결혼 |

 

 

명심하라.

결혼이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가 아니다.

 

오히려 결혼은 당신에게 수많은 새로운 문제를 던져준다.

당신이 당신의 동반자와 기꺼이 그 문제를 풀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때 감행하라. 그 무섭다는 결혼을.

 

 


 

| 행복 |

 

나로선 이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 하나로 다툼과 지긋지긋한 갈등을 미화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정말로 설명이 안 된다.

 

행복 중의 으뜸이 바로 평범한 행복이다.

왜냐하면 삶이, 세상이 우리를 가만 봐두질 않는다.

 

일상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만 한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

당신의 인생은 안타깝다.

 

 


 

| 인생에 결론이 없는 사람 |

 

늘 갈팡질팡하기에 인생의 결론 같은 것은 잘 내리지 못한다.

내게 꿈은 있어야 되는 것이기도 하고

어느 날엔 부질없는 것이기도 해서

여전히 종잡을 수 없고 사랑도 돈도 일도 그러하다.

 

아침엔 정열을 불태우나 잠들기 전엔 공허감에 몸을 떨고

새해벽두엔 뭔가 열심히 계획을 세우다

이내 그해 그 시간 속에 빨려 들어가

 

원래대로의 생활에 익숙해져 버리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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