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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꽃> <빛의 제국> <퀴즈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랑은 왜>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도 했다.
동인문학상 황순원 문학상만 해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가의 작품들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10여 개 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지금의 나보다 더 '살아 있는' 것은
지금껏 내가 '쓴 것'들일 것이다!
지금, 그리고 여기, 언제나 현재로
살아 있는 젊은 소설, 김영하 신작 소설집
도대체 뭘 추천하란 얘기지?
살짝 화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이미 소름이 돋았을
독자들이 널리고 널렸을 테니까.
말하자면 베레타는 참 좋은 총이에요.
당연한 소릴 지껄이고 그걸 말이라고 해요?
핀잔을 들어야 하는 그런 기분이다.
김영하가 돌아왔다.
원 샷, 원 킬. 사정거리 밖에서의 저격처럼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우리에게 내밀었지만, 이 독서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김영하니까!
■ 박민규 소설가 ■
삶이란 별게 아니다.
젖은 우산이 살갗에 달라붙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녀는 그 문구를 계속 되뇌었다.
삶, 젖은 우산, 살갗, 참고 견딘다.
삶, 젖은 우산, 살갗, 참고 견딘다······
'사랑할 시간이 있을 때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이 없을 때에는 더더욱 사랑하라'
여주인공을 너무도 사랑하여
여주인공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마저도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언제든지 그 남자가 싫어지거든
(그런 순간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말한다.
언제든 네 그늘이 되어줄게.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물론 그늘은 그냥 그늘로 끝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녀들은 그 그늘로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사장은 언젠가 자랑스럽게 떠들어댔다.
여자하고 아무 말썽 없이
헤어지는 법이 뭔지 알아?
간단해. 돈을 주는 거야.
이상하게도 돈을 주면 뒤끝이 없어.
여자 때문에 나중에 고생하는 놈들,
막판에 돈 몇 푼을 아껴서 그러는 거야.
안 받으려는 여자?
몰래라도 찔러줘야 돼.
그럼 절대 뒤탈이 없지.
수경은 생각했다.
아마 그런 얘기까지 듣고도
돈을 받을 여자는 흔치 않을 거야.
하지만 난 받아.
창녀여서가 아니라 그 인간하고
나중에 뒤끝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돈을 받으면 거래가 종결됐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마음이 편했다.
'인생을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이제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이상하게 네 얼굴이 떠올라.
네가 내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아간 것 같아.'
바다에서 피비린내가 풍겼다.
이상도 하지. 왜 바다에서 피 냄새가 날까.
저 포구에서 아침마다 생선 배를 갈라서일까.
곶의 첨단에는 차가운 빛은 쏘는 등대가
신화 속의 거대한 외눈박이 괴물처럼
바다를 노려보고 있었다.
쿠루룽. 멀리서 천둥소리 비슷한 것이 울렸지만
아직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했다.
반 친구들도 그를 알고는 있었지만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기 때문에
몇 번 집적거리다가 흥미를 잃고 내버려두었다.
아이답지 않은 깊고 그윽한 눈과 한번 마주치면
잔인하게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둥지에서 떨어져 파닥거리는 어린 새를 보듯,
아이들은 그를 바라보았다.
훗날 그를 알게 된 한 여자는 그의 눈을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눈동자'라고 회상했다.
어머니가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그가 묻자 그녀는, 잘 모르겠다,
괜히 눈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엄마 나이 되면 가끔 이럴 때가 있단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젊은이들을 보면 로마 제국 시대,
가도에 늘어선 묘비들처럼
심술궂게 속삭여주고 싶습니다.
곧 죽을 것을 잊지 말라고.
무엇을 하든 시간은 흘러갑니다.
그녀가 내뿜은 그 유독한 숨의 일부나마
내 것으로 하고 싶습니다.
그녀의 독한 숨은 허파가 없는 나를 지나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인간의 몸이란 물을 통과시키는 하나의 관이며
공기를 담아두는 튜브입니다.
폐 속의 공기로 우리는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남을 욕하고 한숨을 쉽니다.
어쩌면 인간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은 어떤 순간 완벽하게
다른 존재 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정말 인간은 삶의 전 순간을
오직 인간으로만 사는 것일까요?
불교도들이 전생을 믿는 게 아닐까요?
남자 (혹은 여자) 때문에
내가 타락해 버리는 건 아닐까.
벌써 회복 불가능하게
타락해 버린 것은 아닐까.
사람에 따라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타락해 버린 누군가를,
그런 줄도 모른 채 너무도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조는 좀도둑을 사랑한다.
사시미칼을 휘두르는 조폭이나 아내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러버리는 무도한 놈들은 질색이다.
좀도둑은 긴장을 즐기는 자다.
결행 직전 뇌를 질식시키기라도 할 듯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 분수를 사랑하는 자다.
그래서 좀도둑들은 술이나 마약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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