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네가 어릴 때 나는 아주 많은 시간을 들여
네게 숟가락 쓰는 법과
젓가락 쓰는 법을 가르쳤고,
단추를 잠그고,
옷을 입고,
머리 빗고,
콧물 닦는 법을 가르쳤다.
팽이 치는 법과
미끄럼 타는 법도 가르쳐 주었지.
난 너와 함께 한 그 세월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구나······.
내가 가끔 기억을 못 해낼 때,
말을 더듬거리거나
그럴 때 나한테도 시간을 좀 주려무나.
내가 좀 더 생각해 보게 기다려주려무나.
마지막엔 내가 무얼 요구하는 지조차
잊어버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얘야,
우리가 수백 번 반복하고
연습해서 겨우 배웠던 동요를 기억하니?
뜬금없이 나는 어떻게 태어났느냐고
네가 물었을 때 대답을 찾으려고
얼마나 머리를 쥐어짜야 했던지!
그러니 그 옛날 내가 너를 위해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던 것처럼,
어릴 적 같은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하여 흥얼거릴 때처럼,
나를 좀 이해해 주려무나.
아주 잠시나마 그런 추억 속에
잠기게끔 가만 놔주려무나.
간절히 바란다, 얘야.
네가 바쁜 걸 알지만
아주 조금만 시간을 내어
나랑 수다도 좀 떨어주고
그랬으면 좋겠구나!
내가 옷 단추를 잠그지 않거나,
신발 끈을 매지 못하거나,
식사 때 옷을 더럽히거나,
머리 빗다가 손을 떨거나 할 때
제발 재촉하지 말아 다오.
나한테 자그마한 인내심과
부드러움을 가져다오.
아주 잠시라도 너랑 같이 있음으로 해서
난 그나마 항상 따스할 수가 있단다.
얘야!
이제 난 잘 서지도
잘 걷지도 못하는구나.
네가 내 손을 꼭 잡아주고
나랑 같이 천천히,
그 옛날에 내가 너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봤으면······.
만약 네가 자식으로서
이런 부모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면
난 여생을 고통 속에서 떨다가
저세상으로 가고 말겠구나······.
-어느 양로원 벽에 쓰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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