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좋은 글귀

김재진 '하모니카를 잃어버렸네'

메멘토모리:) 2024. 9. 1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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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모두 사라져 버렸네.

밤새워 이야기하던 친구도

영화 속의 주인공을 찾아

헤매던 발길도 지워져버렸네.

십 년 만에 만난 사람 앞에서도 무덤덤한,

잠깐 반가움이 지나고 나면 시들해지는,

망각만이 유일한 나

저기 건물의 유리에 비친

나 또한 내가 아니네.

퀭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낯선 저 사내는 도대체 나일 수 없네.

황망히 바퀴 굴려

알 수 없는 복잡함 속으로

떠나는 저 자동차들만이

내가 있는 곳을 안다고 하네.

읽었던 한 권의 책

머리를 들끓게 하던 한때의 이념

열렬했던 사랑마저 내가 아니네.

하숙집 벽 위에 붙여놓았던

몇 줄의 잠언 속에도 나는 없네.

정말 하모니카를 잃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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