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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시집_시간의 바깥에서 너를 읽는다.

by 메멘토모리:) 202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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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1997년 초판 출간 당시 한 달 만에 6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해 화제가 된 바 있는 김재진의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시인은 197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소설, 시집과 산문, 동화집을 비롯해 현재 명상전문방송 유나를 통해 명상과 마음공부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인간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혼자라는 사실에 대한 가슴 아픈 자각을 한 김재진 시인은 이 시집에서 '혼자야말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가장 반듯한 위안'이라고 말한다. 고단한 삶의 상처를 드러내지만 어둡거나 슬프지 않게, 사랑의 갈망, 사랑의 안타까움과 부질없음을 표현한다. 김재진 시인은 고단한 삶의 상처들을 시집 속에 드러내고 있다. "저는 시를 삶의 상처라고 생각해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삶의 상처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그 상처들과 화해함으로써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슈베르트가 ‘내 슬픔으로부터 비롯된 음악이 사람들을 위안하고 기쁘게 한다’고 한 적이 있듯, 저도 그래요. 이제는 내 상처에서 비롯된 시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위안할 수 있기를 바라게 돼요.”라는 시인의 말처럼 이 시집은 시인 자신의 상처에 대한 기록이자 동시에 그 상처에 대한 치유의 기록이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편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넣고 떠나라.
저자
김재진
출판
바움
출판일
2009.03.10


작가. 김재진

[​어느 시인의 이야기]

[당신이 그리운 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2]

197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와 1985년 [시인]에 시가,

1993년 조선일보와 작가세계에 소설이 당선되었고,

몇 권의 시집과 산문, 동화집을 펴내었다.

오랫동안 방송국 피디로 일했으며,

직장을 떠난 뒤 명상과 마음공부 프로그램들을

배우거나 가르치며 살아왔다.

정목 스님과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돕는 프로그램인

'거룩한 만남'과 아픈 어린이 돕기 '작은 사랑'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현재 명상전문 방송 유나를 통해

명상과 마음공부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는

다소 선언적인 제목을 가진 이 시집의 시들은

어둡고 추운 삶의 길목에서 그가 피워낸 장미 향기 같은 것이다.


아직도 이 메일을 쓰실까요?

한없이 깊고 나지막한 목소리 같은 선생님의

글 좋아하는 독자입니다.

사실 ​이건 저희 엄마의 메일인데,

딸인 제가 들어와서 정리하다가

선생님과 저희 엄마가 나누셨던 몇 개의

메일들을 보고 글을 드립니다.

아아....

그냥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네요.

선생님의 시집을 유난히도 좋아하시던 엄마였는데...

잡지에 선생님의 글이 실려 있었을 때엔

예쁘게 오려 책상 유리에 끼워주시던 선생님의 팬이셨어요.

암으로 십 년을 투병하시다 지난봄에

암이 없는 나라로 훨훨 날아가셨죠.

잘 지내실 거예요.

김재진 선생님!

선생님의 따뜻한 시들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시는 엄마의 힘든 일상 속에

따뜻한 차 같은 존재였을 거예요.

뜬금없는 긴 편지를 쓴 게 실례가

아니었으면 해요.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어느 독자의 편지 -



그 시절 우리는

시간이 머무는 줄 알았다.

그러나 때로 시간은 흘러가며

우리를 떠내려 보내고

맨발의 시간을

껴안을 수 없던 우리는

세상의 바깥에서 바깥으로 떠돌아다니곤 했다.

기차가 남긴 기억 그 너머로 아득해진 세월과

세상을 내려놓은 이는 결국 세상 바깥으로 밀려가는 법인지

한때 우리가 읽었던 세월은 그대 가슴속에나 남아 있고

회랑을 돌아 마주치던 빛들이

몇 장의 추억을 인화할 때

주름살 사이로 짙어져 가는 눈길을 우리는 허무라고 불렀다.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을 만나러 가느라 서둘렀던 적 있습니다.

마음이 먼저 약속 장소에 나가

도착하지 않은 당신을 기다린 적 있습니다.

멀리서 온 편지 뜯듯 손가락 떨리고

걸어오는 사람들이 다 당신처럼 보여

여기예요, 여기예요, 손짓한 적 있습니다.

차츰 어둠이 어깨 위로 쌓였지만

오리라 믿었던 당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입니다.

어차피 삶 또한 그런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이 오지 않듯

인생은 지킬 수 없는 약속 같을 뿐

사랑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실망 위로 또 다른 실망이 겹쳐지며

체념을 배웁니다.

잦은 실망과 때늦은 후회,

부서진 사랑 때문에 겪는

아픔 또한 아득해질 무렵

비로소 깨닫습니다.

왜 기다렸던 사람이 오지 않았는지,

갈망하면서도 왜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지.

사랑은 기다림만큼 더디 오는 법

다시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나갑니다.


#언제나 너는 멀다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을 너는 느낀다.

알 수 없는 너의 느낌

나처럼 너 역시 나를 알 수가 없다.

노란 햇살이 현기증처럼 퍼지고

골목마다 차들이 바퀴벌레처럼 기어 나온다,

가까이 있지만 너는 언제나 멀다.

오래된 대문을 소리 내어 밀며

주저앉아 울먹이는 봄날의 상실

흙 한 줌 찾기 힘든 바닥을 비집고

햇살보다 노란 민들레가 핀다.

더 이상 나는

너를 견디기를 포기한다.

포기한다는 것은 삶과의 타협

다 그런 거야.

더 이상은 세상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

모르는 척 있는 거야 그저.

삶의 이치에 익숙한 듯

앞서서 가고 있는 너

마음아 너는,

마음아 너는······

등 돌린 사람에 길들여지는

새로운 인간관계에 안착한다.

붙들지 못한 마음 좇아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또 다른 마음이 겪는 행로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나는 정말

알 수 없는 모양이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 보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 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공원에서

재미없어, 하며 또 한 사람이 지나가고

버릇처럼 손을 잡으며

재미없어···누가 또 이야기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다가 흐르기도 하고

월급날을 기다리다 월급날을 잊어버리며 나는

모르는 사람들의 배경으로 찍히기도 하며

적당히 웃어두는 것에 길든 사람들의

재미없는 친구가 되어 살아갔다.

아버지도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때로 공원을 걷기도 하며,

봄이 오는 문 앞에서,

수당의 끝자리 수가 바뀐 것만큼도 흥분하지 않으며

여자들이 계절을 기다리고

출세한 사람들의 인생처럼 봄은 오는지

똑똑한 사람들의 배경으로 찍히며 나는

아무것도 없었던 꿈처럼

여전히 아무것도 없을 내일을 생각했다.


#혼자 있는 시간

내 속에서 걸어 나온 사내 하나

나를 보고 있다.

거울 속에서도

낯선 사내 하나 곰곰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사방에서

감시당하고 있다.

나를 들여다보는 몇 개의 나.

까딱거리고 있는 저 손가락은

누가 움직이는 것인가.

누가 누른 스위치에 의해 나는

웃거나 때로

찌푸려야 하는 건가.

혼자 있는 시간에도 완벽하게 나는

혼자이지 못하다.

그러나 누가 함께 있을 수 있겠는가.

아무도,

언제나 그러하듯 마침내 아무도

같이 있을 수 없다.


#산다는 게 뭔데

신경아, 너는 얼마나 견딜까.

어제와 오늘의 경계,

아니면 오늘과 내일이 갈라지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심지처럼 태우고 있는

내 신경아 너는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행여 그것이 꿈이라 해도

그것이 행여 착각이라 해도

희망 없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살아간다는 말은 이겨낸다는 말.

이겨낸다는 말보다 오히려

잊어낸다는 말.

그러나 하등의 희망 없어도 사람들은

살아내고 있잖은가.

순간을 위무하는 안식이나

오랜 습관이 된 무관심,

약처럼 찾아오는 망각 사이에

거미줄처럼 걸려

내 신경아 너는

얼마나 더 견디어낼 수 있을까.


#지나간 노래

지나간 노래를 들으며

지나간 시절을 생각한다.

뜨거웠던 자들이 식어가는 계절에

지나간 노래에 묻어 있는

안개빛을 만나는 것은 아프다.

너무 빨리 늙어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보다

아프다.

누군가 나를 만나며 아파야 할

그 사람을 생각하면

지나간 노래를 들으며

지나간 시절을 생각하는 것은 아프다.


#나

누구인가?

그림자처럼 따르며

가만히 나를 지켜보는 눈은.

머리 흔들어 떨쳐내려 해도

내 속에 누군가 숨어있다.

숨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나는 도대체 어디서?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온 곳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갈 어딘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속에 숨어 나를 지켜보는

그늘지고 깊은 눈

내 죽고 나서도 어쩌면 그렇게

지켜보고 있을 눈

문득 나는 내가

몇 개의 나로 겹쳐져 있음을 깨닫는다.


#밤이니까

울어도 돼, 밤이니까.

울긴 울되 소리 죽여

시냇물 잦아들듯 흐느끼면 돼.

새도록 쓴 편지를 아침에 찢듯

밤이니까 괜찮아 한심한 눈물은 젖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야.

넋 나간 모습으로 앉아 있거나

까마득한 벼랑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아아, 소리치며 뛰어내리거나

미친 듯 자동차를 달리거나

무슨 상관이야.

사람들의 꿈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문득

부러진 연필심처럼 버려진 채

까만 밤을 지샌 들 무슨 상관이야.

해가 뜨면 그뿐,

밤이니까 괜찮아.

말짱한 표정으로 옷 갈아입고

사람들 속에 서서 키득거리거나

온종일 나 아닌 남으로 살거나

남의 속 해딱해딱 뒤집어놓으면 어때

떠나면 그뿐.

가면 그뿐인데.

밤에는 괜찮아, 너 없는 밤엔 괜찮아.


#따라 부르지 않는 노래

마음속에 한 여자 있네.

비가 와도 떠내려가지 않는 여자

가끔은 마음속에

졸졸대며 흐르는 시냇물 소리 들리네.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 버린 세월

침묵이 두려워

지나간 유행가나 불렀네.

아무도 따라 부리지 않는 노래

변하지 않는 건 슬픔밖에 없네.

오랜 세월

기다리고 있는 건 슬픔밖에 없네.

마음속에 한 여자 살고 있네.

바람이 세차도 날려가지 않는 여자.

그 여자의 마음속에

나는 없네.


#그 생각

제발 그만,

눈 꼭 감고 빠르게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이럴 때 나는 팽팽하게 조여진,

끊어질까 두려운

태엽이다.

내 머릿속에 살고 있는 쥐.

비누 조각처럼 나는 갉아 먹힐 뿐이다.

자석처럼 바닥에 붙어

뉘어 있는 나는 이미

지워버리고 싶은 낙서.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내 머리통을 밀착한 낙지 한 마리

집요하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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